불국사의 개요, 창건, 역사 임진왜란 시 전소, 중건, 창건 김대건 논란, 석굴암
375. 불국사의 개요, 창건, 역사 임진왜란 시 전소, 중건, 창건 김대건 논란, 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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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불국사의 설명, 정체
1. 불국사의 소개
불국사(부처 佛, 나라 國, 절 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호국사찰이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석굴암과 함께 지정되었습니다.
불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로서, 대표적인 소속 말사는 분황사, 기림사, 골굴사, 불영사 등이 있고, 대표적인 암자로는 석굴암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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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불국사의 간단한 설명
구 분 | 관 련 내 용 | 비 고 |
이 름 | 경주 불국사 | |
종 파 | 대한불교 조계종 | |
건립연대 | 삼국시대,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년) | |
창 건 자 |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 | |
별 칭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
국 가 | 대한민국 | |
소 재 지 |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진현동) |
Ⅲ. 불국사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
1. 신라인들의 토함산
신라인들은 경주 토함산을 호국의 산으로 신성하게 여겼기에 안개를 토하듯 뱉어내는 토함산에 최고의 사찰을 짓고 싶어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불국사와 석굴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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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창건자 김대성?
흔히 재상 김대성이 창건하였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이 528년에 창건하였고, 삼국통일 후에 재상 김대성이 크게 중창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3. 석굴암 가는 길
2024년 현재는 토함산을 둘러서 석굴암으로 바로 가는 도로가 있지만, 이전에는 불국사 등산로로 석굴암을 갔습니다.
Ⅳ.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설명자료
1. 창건 및 전소
경주 토함산에 자리 잡은 불국사는 신라 경덕왕 10년(751)에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짓기 시작하여, 혜공왕 10년(774)에 완성하였습니다. 이후 조선 선조 26년(1593)에 왜의 침입으로 대부분 건물이 전소하였습니다.
2. 전소 후 남은 건물 그리고 이후
이후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이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1969년에서 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3. 불국사 경내에 있는 국가 유산
경내에는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다보탑 그리고, 석가탑(무영탑)으로 불리는 3층 석탑,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백운교, 극락전으로 오르는 연화⋅칠보교가 국보로 지정,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유산은 당시 신라 사람들의 돌을 다루는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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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비로전에 모신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극락전에 모신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화유산도 당시의 찬란했던 불교문화를 되새기게 합니다.
4.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95년 12월에 석굴암과 함께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Ⅴ. 불국사의 역사
1. 삼국시대
구 분 | 관 련 내 용 | 비 고 |
528년(신라 법흥왕 15년) |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이 창건 | |
574년(신라 진흥왕 35년) | 진흥왕의 어머니 지소부인이 중건, 비로나자불, 아미타불 주조 후 봉안 | |
670년(통일신라 문무왕 10년) | 무설전을 지은 후 화엄경 가르침 |
2. 남북국 시대
구 분 | 관 련 내 용 | 비 고 |
751년(통일신라 경덕왕 10년) | • 당시 재상인 김대건에 의해 중창 시작 • 석가탑, 다보탑, 석교(청운교, 백운교) 등을 축조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춤 • 김대건의 중창 사유 =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 중창, 그리고 전생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사(현재의 석굴암)를 창건하였습니다. |
|
774년(신라 혜공왕 10년) | • 재상 김대성 사망 후 통일신라에서 대규모 중창을 마무리, 80종 건물, 총 2,000여 칸의 대사찰로 마무리 |
3. 조선 시대
구 분 | 관 련 내 용 | 비 고 |
임진왜란 직전 | • 동경유로, 간재집 등에 건물 1,000여 칸으로 기록 | |
1593년 05월(선조 23년) | • 왜군 제2군 사령관 가토 기요마사가 방화와 파괴 지시 • 불국사 대부분 전소 |
|
1604년(선조 37년) | • 임진왜란 피해로부터 복구와 중건 시작 | |
1765년(영조 41년) | • 대웅전 재건 | |
1779년(정조 3년) | • 경주 유림의 지원으로 불국사 중창 | |
1805년(순조 5년) | •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속적인 40여 차례의 부분적인 중수를 비로전을 끝으로 마무리함. • 이후 조선의 국운과 더불어 불국사 기운이 쇠퇴 시작 • 많은 건물이 파괴되고 여러 보물이 도난당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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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한민국
구 분 | 관 련 내 용 | 비 고 |
1969~1973년 | • 당시 8억 원의 예산으로 회랑과 난간 등을 복원함. |
Ⅵ. 중창자 김대건의 논란
1. 삼국유사의 오기 김대건
삼국유사에 기록된 내용은 당시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하고 석굴암을 창건하였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불국사와 석굴암의 규모를 보면, 한 나라의 국력을 쏟아부어야 할 정도이지, 왕이 아닌 재상이 건축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습니다.
2. 불국사의 중창과 석굴사(석굴암)의 창건
원칙적으로 불국사는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중창하였고, 석굴암도 마찬가지로 이유로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들 혜공왕이 시해당하면서 통일신라의 왕위는 순수한 진골 혈통과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3. 창건자가 김대성인 사유
후에 왕위에 오른 원성왕은 성덕왕과 경덕왕의 사당까지 없애버립니다. 자신과 혈통이 다른 왕들을 추모하는 절을 그대로 둘 수 없었기에, 창건자를 재상 김대성으로 만들어 소문을 내었고, 이것을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하던 고려 시대는 물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설입니다.
Ⅶ. 불국사 경내의 반드시 보셔야 할 보물들
1. 불국사 대웅전
불국사 대웅전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섰을 때, 가운데는 통일신라 시대 석등이 있고, 좌측에는 석가탑, 우측에는 다보탑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에 주불은 석가모니불이고, 좌측에는 제화갈라보살, 우측에는 미륵보살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가장 끝 양쪽에는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존자와 마하가섭존자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2. 석가탑과 다보탑
석가탑과 다보탑은 『묘법연화경(일명, 법화경)』의 『견보탑품』 내용을 보여주는 탑입니다. 『법화경』에서 이것을 설법하는 석가모니를 찬양하기 위해 다보여래가 보탑의 형상으로 솟아나 공중에 머물며 찬양한 후, 탑 내의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나란히 앉았다. 라는 장면을 현실의 세계로 나타낸 것입니다.
3. 석가탑
석가탑은 석가모니여래를 상징합니다. 『불국사 사적기』에는 석가탑이 석가여래상주설법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석가탑의 또 다른 이름은 무영탑으로 그림자가 없는 탑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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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에서 석가탑을 제작하기 위하여 신라로 온 남편 아사달과 부인 아사녀 그리고 영지(그림자 호수)에 얽힌 전설이 반영된 별명입니다.
4. 다보탑
다보탑은 다보여래를 상징합니다. 『불국사 사적기』에는 다보탑이 다보여래상주증명탑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5. 불국사 입구인 청운교와 백운교에 오르는 과정
남북국 시대 신라의 건축물로 대한민국의 국보 제2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청운⋅백운교는 계단인데, 다리라는 교(다리 橋)가 붙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래 불국사는 토함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주위를 호수로 만들어 놓아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배를 백운교에 정박하고 불국사로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2024년 현재는 물을 모으지 않고 바로 흘려보내므로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불국사 왼쪽 주변을 둘러보면 땅을 깊게 파서 콘크리트로 마감한 크고 깊은 배수로를 볼 수 있습니다.
6. 청운교와 백운교
불국사 입구(정문)인 청운교와 백운교를 오르면 자하문을 통해 석가모니여래가 있는 대웅전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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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현생 세계를 의미합니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사람들이 청운교와 백운교로 올라서서 현세의 석가모니불에게 가는 그런 구조입니다.
7. 연화교와 칠보교
연화교와 칠보교를 오르면 안양문을 통해 아미타여래가 있는 극락전이 나옵니다. 이곳은 내생 세계(극락정토)를 의미고, 영가(죽은 사람)들은 연화교와 칠보교로 올라 내세(극락정토)의 아미타불에게 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연화교와 칠보교는 사람들이 이용하지 않는 상징적인 다리입니다. 형식은 청운교와 백운교와 같으나, 크기가 작습니다.
8. 범영루
4개의 다리 사이에 있는 누각으로 원래 범종이 걸려있던 곳인데, 현재는 범종각을 따로 만들어 종을 걸어놓았습니다.
9. 비로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할 때, 주조하여 봉안한 비로자나불이 있습니다.
10. 비로전 사리탑과 밀반출 그리고 제자리로 복원
대한제국 시기에 일본 건축가였던 세키노 다다시가 불국사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책으로 펴내서, 일본인 지인에게 선물을 하였습니다. 세키노 다다시는 불국사 비로전 사리탑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석등』이라고 널리 알리고 다녔고, 이것이 밀반출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1905년 어떤 일본인이 사리탑을 일본으로 불법으로 이동하여, 동경의 우에노 공원에 세워놓았습니다. 세키노 다다시가 사리탑을 찾으러 우에노 공원으로 갔으나, 탑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후 세키노 다다시는 20여 년 동안 사리탑의 행방을 계속 추적하여 일본의 한 제약회사 사장의 집 정원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1933년 불국사로 반환시켜 비로전 앞에 다시 세워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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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1972년에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습니다.
11. 기타 여러 가지 국가 유산 산재
기타 여러 가지 국가 유산이 산재하여 있으니 불국사에 가시면 천천히, 여유 있게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