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관참시의 의미, 효과, 한국과 서양의 역사적 실제 사례 등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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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부관참시의 한자 풀이
剖 : 쪼갤 부
棺 : 널 관
斬 : 벨 참
屍 : 주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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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덤을 파고 관을 꺼내어 시체를 베거나 목을 잘라서 거리에 내걸음.
- 죽은 뒤에 큰 죄가 드러난 사람을 극형에 처하는 제도.
Ⅱ. 부관참시의 의미
- 이 말은 이미 죽은 사람이 생전에 저질렀던 죄상이 뒤늦게 드러난 경우
-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그 시체에 극형을 내리는 걸 말한다.
- 죽은 후에 정치적인 이유 혹은 살아 있을 당시 그 위세에 눌려
- 죄목을 따지지 못했을 경우에 시행합니다.
- 전자의 대표적인 예는 조선시대 사화에서 벌어졌고
- 후자의 대표적인 예는 영국의 청교도 혁명 때 권세를 잡고
- 독재정치를 펼쳤던 올리버 크롬웰이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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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체의 목을 베기 때문에 부관참두(剖棺斬頭)
- 혹은 육시효수(戮屍梟首)라고도 불립니다.
- 살아 있는 사람을 산 채로 살을 발라내 사형시키는
- 형벌인 능지처참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Ⅲ. 부관참시의 효과
- 사실 의학적으로 이미 죽은 사람의 몸에 무슨 짓을 한다고 해서
- 당사자는 이미 죽은 몸이니 당연히 육체적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므로
- 이성적으로 보자면 정말 쓸데없는 행위입니다.
- 인간 사회에서 시체 훼손은 당사자보다는 이 행위로 인해 어떤 형태로든
- 정신적 영향을 받을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과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즉 부관참시는 실질적인 형벌이 아닌 정치적인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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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근대 사회에서도 시체 훼손은 금기였지만
- 현대 사회에서도 되도록 금기시하는 편이며
- 시체 훼손 행위를 해당 시체의 주인인 고인의 명예를 훼손한다고 해서
- 법으로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 대한민국에도 시체등손괴⋅유기⋅은닉⋅영득죄 조항이 있습니다.
- 이런 상황에서 부관참시는 정치적 리스크가 상당히 큰 행위로 부관참시를 하는 사람이
- 절대적인 권력을 손에 쥘 수가 있을 만큼 강하거나 시체 주인이 알고 보니
- 굉장히 사악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 때문에 보통은 그런 역풍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 압도적인 권위가 새로이 들어섰을 때 행해지는 편입니다.
Ⅳ. 한국사의 사례
1. 신라시대
- 신라의 반란자 김헌창은 김헌창의 난을 일으켰으나 웅진성이 포위되고
- 패색이 짙자 자결하고 부하들이 그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머리와 몸을 베어
- 따로 묻었지만 웅진성을 함락한 신라군은
- 김헌창의 시체를 수색해 모아서 다시 베었다고 합니다.
2. 고려시대
- 고려 시대에도 삼국사기의 편찬자이자 저명한 유학자였던 김부식이
- 1170년 일어난 무신정변 이후 묘가 파헤쳐진 뒤 부관참시 당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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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인종 때 그와 그의 아들인 김돈중이 무장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먹는 사건이 있었고
- 이 사건에 앙심을 품고 있던 정중부를 위시한 무신들이 김돈중을 처참히 죽인 뒤
- 그의 아버지인 김부식의 시신마저 묘에서 꺼내 무참히 시신을 토막내 버렸다고 합니다.
3. 조선시대
- 부관참시로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바로 무오사화의 원인이 된 김종직의 조의제문인데
- 이것은 패왕 항우에게 결국 왕좌를 넘겨준 초나라 의제를 빗대어
- 세조의 왕위 찬탈을 은유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연산군 4년에 유자광이
- 이를 연산군에게 고하는 바람에 일이 터졌습니다.
- 결국 김일손, 권오복 같은 김종직의 제자들이 거열형을 당했으며
- 김종직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묘가 파헤쳐져
- 시체는 토막 나고 효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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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이면 몰라도 전근대 시절 김종직의 세조에 대한 공격은 비단 연산군 뿐만 아니라
- 그 어느 왕이라도 묵과할 수 없는 왕실 능멸이었습니다.
Ⅴ. 서양의 사례
- 철기대를 이끌고 청교도 혁명에 승리하여 찰스 1세의 목을 치고 의회파의 영웅이 된
- 올리버 크롬웰도 혁명 후 독재 정치를 펼쳤는데 사후 아들인 리처드 크롬웰에게
- 권력을 이양하려고 하다가 장로파가 왕정복고를 실행해 찰스 2세를 옹립하면서
- 한 때 호국경 이었던 크롬웰은 왕을 죽였다는 반역자란 죄목이 붙었고
- 1660년 12월 4일 의회 투표를 통해 크롬웰의 부관참시를 결정했습니다.
-1661년 1월 30일, 그러니까 찰스 1세 처형 12주년 기념일인 바로 그날에
- 무덤에서 꺼내서 9시간 동안 런던의 교수대에 매달린 후 토막냈습니다.
- 시체는 매장 당시 잘 절였기 때문에 그냥은 잘 잘리지도 않아
- 도끼로 30번을 내리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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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은 장대에 꽂혀 웨스트민스터 성당 홀에 걸렸으며
- 살점들은 교수대 근처 들판에 뿌려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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