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 창덕궁의 개요, 창건, 역사, 창덕궁 후원은 비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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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창덕궁의 개요, 설명, 정의
1. 창덕궁은 동궐
창덕궁(창성할 昌, 덕 德, 집 宮)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시대 궁궐로 동쪽으로 창경궁과 맞닿아 있고, 경복궁의 동쪽에 있어서 조선 시대에는 창경궁과 더불어 동궐(동녘 東, 대궐 闕) 이라고 불렸습니다.
2. 원형이 잘 보존된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
창덕궁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중요한 고궁이며, 특히 창덕궁 후원은 한국의 유일한 궁궐후원이라는 점과 한국의 정원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고, 1997년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3. 창덕궁의 건축미, 배치 등
창덕궁은 고려 시대 궁궐의 전통을 이어받았고, 개성 송악산의 만월대처럼 자연 지형에 맞추어 산자락에 지어졌습니다. 보통 궁궐은 인위적으로 존엄성과 권위를 드러내도록 건축하는데 창덕궁은 이러한 얽매임 없이 북악산의 줄기인 응봉의, 산자락 생긴 모양에 맞추어 적절하게 궁궐의 기능을 배치하였습니다.
4. 경복궁과 창덕궁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보다 오히려 더 많이 쓰인 궁궐로서,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화재에 의해 소실된 이후 274년 후에 다시 지어졌고, 1868년 경복궁이 다시 지어질 때까지 경복궁의 역할을 대체하여 임금이 거처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정궁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부분이 손실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그린 동궐도와 1900년에 그려진 동궐도형을 참조하여 복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Ⅱ. 창덕궁의 간단한 설명
구 분 | 관 련 내 용 | 비 고 |
분 류 | 유적건조물, 정치 국방, 궁궐 | |
수량, 면적 | 수량 : 1, 면적 : 556,062.4㎡ = 168,208.8평 | |
지 정 일 | 1963년 01월 18일 |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와룡동) | |
시 대 | 조선 태종 5년(1,405년) | |
소 유 자 | 국가(문화재청) | |
관 리 자 | 문화재청 창덕궁관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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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의 설명자료
1. 창덕궁의 정의
창덕궁은 1405년(태종 5)에 창건한 조선왕조의 궁궐입니다. 처음에는 법궁인 경복궁에 이어 이궁(離宮, 법궁 외에 별도로 지은 궁궐)으로 창건했지만, 이후 역대 왕들이 주로 창덕궁에 거주하면서 실질적인 법궁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2. 창덕궁에 대한 설명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으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소실되자 제일 먼저 1610년(광해군 2년)에 중건되었고, 1867년(고종 4년)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270여 년 동안 법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창경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렀으며, 조선 후기에 들어 옥류천, 규장각, 주합루, 연경당, 낙선재 등의 건물이 조성되면서 창덕궁의 영역은 점차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3. 창덕궁에서의 주요 행사
창덕궁은 크게 국왕의 즉위식 등 큰 행사를 치렀던 정전(인정전)과 국왕이 신하들과 정사를 돌보던 편전(선정전),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희정당, 대조전 등),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부용지, 애련지 등)으로 나누어집니다. 후원은 자연경관을 살려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었습니다.
4. 경복궁과 다른 창덕궁의 특징
창덕궁은 경복궁과 다르게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산세 지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하여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왕가의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창덕궁의 공간 구성은 경희궁이나 경운궁 등 다른 궁궐의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비정형적 조형미를 간직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궁궐 건축물로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가 탁월하다는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Ⅳ. 창덕궁의 역사
1. 경복궁과 창덕궁의 비교
창덕궁은 태종 5년(1405년)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로 세워진 조선의 궁궐입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개경에 있던 고려 궁궐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라 조선을 건국한 뒤, 재위 3년(1394년)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고 이듬해에 조선의 법궁으로 경복궁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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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건국 직후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왕자와 공신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왕자의 난이 두 차례나 일어나 경복궁의 지위는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2. 정종의 개경 천도와 태종의 한양 재천도 등
이방원이 옹립한 정종은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재위 2년(1400년)에 한양의 지세가 좋지 않다며 도읍을 다시 개경으로 옮겼습니다. 그 뒤 정종에게서 왕위를 양위 받은 태종이 재위 5년(1405년)에 다시 한양으로 환도하면서, 정궁인 경복궁을 비워두고 경복궁 동쪽 향고동에 궁궐을 새로 지어 창덕궁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1408년 태조 이성계는 이 궁에서 승하하였습니다. 태종 11년(1411년)에 진선문과 금천교, 이듬해에 돈화문에 이어 여러 전각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창덕궁은 점차 궁궐의 모습을 갖추어갔습니다.
3. 창덕궁은 가장 오래 사용한 궁궐
창덕궁은 500여 년 조선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임금이 거처한 궁궐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었으나, 조선 초기부터 여러 임금이 경복궁을 기피 하여 창덕궁이 그 자리를 대신할 때가 많았습니다. 특히 태종은 왕위를 위해 이복동생을 죽인 곳인데다, 자신의 정적 정도전이 주동하여 건설한 경복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4. 임진왜란 시 경복궁의 소실로 인한 창덕궁의 위상
창덕궁의 위상은 임진왜란으로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선조 25년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한양에 있던 모든 궁궐이 불타버리자, 선조 38년(1605년)부터 재건 준비를 시작하여 광해군 원년(1609년) 10월에 인정전 등 주요 전각이 거의 복구되었으며, 이때 공사가 완벽하지는 않았는지 이듬해 2월부터 다시 공사가 진행되어 9월에 완료되었습니다. 이후 역대 왕들은 창덕궁에서 주로 정무를 보았습니다.
5. 인조반정으로 인한 소실과 재건 등
인조반정으로 궁궐 대부분이 소실, 조선 인조 25년 1647년에 재건하였는데 인조는 한편 후원에 여러 정자와 연못을 조성하였습니다. 숙종 30년(1704년) 12월에 대보단이 조성되었으며, 정조는 인정전에 품계석을 세우고 후원에 부용지를 중심으로 부용정, 주합루, 서향각을 세우고, 국내외 서적을 보관하기 위하여 열고관, 개유와, 서고를 지었습니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의두합과 연경당을 지어 오늘날의 후원 모습을 마무리하였으며, 헌종은 짧은 재위 기간 동안에,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를 건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6. 조선 말기의 창덕궁
조선 말기에는 서구의 문물을 도입하면서 창덕궁에서도 서양식의 전등이나 차고가 설치되기도 하였고, 대한제국 시기인 1907년에는 순종이 즉위 후 이곳으로 이사하여 황궁이 되었습니다.
7. 일제강점기의 창덕궁
일제강점기에는 돈화문 앞에, 도로가 생겨 창덕궁과 종묘가 갈라졌으며, 주요 전각 외의 여러 건물이 대부분 헐리는 등 궁궐이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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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부터는 창덕궁의 후원과 아울러 인정전 등의 중심부와 낙선재 등이 창경궁과 함께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1917년에는 대조전과 희정당 같은 핵심 전각이 소실되었으며, 이곳을 재건하기 위하여 1918년에 조선총독부와 이왕직에서는 경복궁 교태전, 강녕전과 그 앞의 행각을 헐어다 창덕궁으로 개조, 이건 하였습니다. 1921년에 일제는 대보단을 없애고 그 자리에 신 선원전을 지었습니다.
8. 해방 후의 창덕궁과 세계문화유산 등록
해방 이후에도 창덕궁은 한동안 그대로 방치되었으며, 주변에는 민가와 학교, 대형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복원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1997년에는 조형미와 주변환경과의 조화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9. 대한민국의 창덕궁
2022년 7월에는 서울시가 『창경궁 - 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을 실시하여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가르던 율곡로를 지하화해 상부에 녹지를 조성하고 끊어졌던 녹지 축을 연결했습니다. 궁궐 담장 길 중간에는 임금이 비공식적으로 창경궁에서 종묘로 갈 때 이용했던 북신문을 규모와 형태가 가장 유사한 창경궁의 동문인 월근문을 참고해 복원했습니다.
Ⅴ. 창덕궁의 특징
1. 뛰어난 원형 보존
한양 5대 궁궐 중 원형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고, 이 때문에 조선을 대표하는 궁궐로 경복궁이 아닌 창덕궁을 꼽아야 한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한다.
경복궁 대부분 전각은 길어야 19세기에 새로 지은 것이며, 그나마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대다수를 허물었다가 광복 이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서 새로 복원한 것입니다.
그러나 창덕궁 전각들은 인정전을 포함한 대부분이 원형이라서 궁궐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습니다. 창덕궁 돈화문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유네스코 기념비가 나오는데 『창덕궁 Palace』라고 적혀있습니다. 특히 돈화문, 인정전, 선정전 등 많은 건물이 원형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사적으로의 가치도 높습니다. 달리 말하면 다른 조선 궁궐들보다 상대적으로 창덕궁의 가치가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창덕궁 전각은 무겁다 못해 매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2. 경복궁보다도 긴 세월이 깃든 궁궐
경복궁이 한양 5대 고궁 중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도로는 특출나게 압도적인 탓에, 역사성까지 나머지 궁궐들도 압도한다는 오해가 흔하나, 사실 경복궁의 역사는 창덕궁보다 훨씬 짧은 편입니다.
창덕궁은 경복궁보다 갑절이 넘는 시기 동안 왕의 주요 궁궐(정궁)의 지위를 유지하였는데,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흥선대원군이 재건하기까지 275년 동안은 터만 남아있던 궁궐이기에, 조선왕조 500년간 경복궁에서 왕이 정사를 보던 시기는 200년 안팎으로 창덕궁보다 짧습니다. 즉 경복궁은 조선 전기와 말기 고종 시대에만 궁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셈입니다. 반면에 창덕궁은 조선 건국 직후부터 망국까지 계속 존속했던 유일한 궁궐입니다.
3. 창덕궁의 특이한 건물 배치
경복궁은 중앙축을 중심으로 한 건물 배치를 중시하는 등 전례를 엄격하게 존중해서 지은 궁입니다. 그러나 창덕궁은 건물들이 지형을 따라 자유롭게 흩어져 배치된 궁입니다. 심지어 궁궐의 정문과 정전이 완전히 틀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된 사유는, 창덕궁의 지형이 주변 언덕과 어우러지고자 했으며, 특히 창덕궁 바로 남쪽 부분에 있는 종묘의 지맥을 훼손하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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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배치는 다른 동양 궁궐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그래서 창덕궁은 한국만의 독특한 궁궐 건축 배치를 보여주는 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Ⅵ. 창덕궁의 후원
1. 후원, 금원, 북원, 비원
창덕궁의 아름다운 풍경 중 하이라이트는 궁 북쪽의 정원인 창덕궁 후원(뒤 後, 나라 동산 苑)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이 정원의 명칭은 후원이 가장 많고 이외에도 금원(금할 禁, 나라 동산 苑), 북원(북녘 北, 나라 동산 苑) 등이 있습니다. 금원은 아무나 못 들어가는 정원이라는 의미이고 북원은 궁궐 북쪽의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정원의 이름을 두고 갑론을박이 꽤 오랫동안 이어져 왔습니다. 한동안 이 정원을 칭했던 이름은 『비밀의 정원』이라는 뜻의 『비원(귀신 祕, 나라 동산 苑)』이었습니다.
2. 비원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 정원을 비원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 관련 문건에도 후원을 칭하는 명칭은 비원(Piwon, the Secret garden)이라고 표기돼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조선총독부가 조선 궁궐의 격을 낮추고 특히 창덕궁 후원을 낮춰부르기 위해 비원이라고 명명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의도적으로 일제가 비원이라는 이름을 부르도록 강요했다는 사료적 근거는 없습니다.
3. 대한제국 때 명명한 비원
비원이라는 명칭은 대한제국 때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 근거로는 대한제국기의 법령을 모아 발간한 『법규 유편』제1권 관직 항목에 창덕궁 후원을 『비원』이라고 칭하고, 비원을 관리할 관리의 직책과 인원을 규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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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법규 유편은 대법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대법원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국역하여 무료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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