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의 계획, 착공, 준공, 방화로 인한 소실, 재착수 및 준공, 남대문, 대한민국 국보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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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숭례문, 남대문, 대한민국 국보 1호에 대한 설명
1. 숭례문, 남대문, 대한민국 국보 1호의 정체
숭례문(崇 : 높을 숭, 禮 : 예도 례, 門 : 문 문)은 조선의 수도였던 서울의 4대문[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 중의 하나로서 경복궁의 남쪽에 위치한 대문입니다. 보통은 숭례문이라 부르지 않고 경복궁의 남쪽에 있기에 남대문(南 : 남녁 남, 大 : 큰 대, 門 : 문 문)이라고도 부릅니다.
2. 정도전의 경복궁 계획 시 오행 사상에 따른 명칭 적용
한양(서울) 경복궁의 사대문과 보신각의 이름은 정도전이 오행 사상을 따라 지었는데, 오행 사상에 따른 명칭은 인(仁: 동), 의(義: 서), 례(禮: 남), 지(智: 북), 신(信: 중앙)의 5덕을 표현한 것이었으며, 숭례문의 “례”자는 오행 사상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3. 숭례문의 현판 : 밑에서 별도로 다룹니다.
숭례문의 현판(편액)은 지봉유설에 따르면 양녕대군이 썼다고 알려져 있으며 정설로 알려집니다. 1396년(태조 5년)에 최유경의 지휘로 축성하였습니다. 1447년(세종 29년)과 1479년(성종 10년)에 보수를 시행하였습니다.
Ⅱ. 숭례문, 남대문, 대한민국 국보 1호와 개방
1. 숭례문의 개방
2006년 03월 03일, 숭례문이 주변 도로에 의해 고립되는 것을 방지하고, 일반 시민들에게 문화재를 개방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에서 숭례문의 중앙통로를 일반인에게 개방하였습니다.
2. 숭례문의 방화사건과 임시 대책 그리고 복원 발표 후 복원
2008년 02월 10일 오후 8시 40분경 방화범 채종기의 숭례문 방화로 인해 불타기 시작해 약 5시간 후인 2008년 02월 11일 오전 1시 54분, 목조 건물 일부와 석축 기반을 남기고 2층 누각이 모두 붕괴 후 소실(불에 탐)되었습니다. 2008년 숭례문의 소실 직후, 서울시 중구청에서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한 가림막을 설치하였고, 기온이나 강수, 바람 등 기상요인에 의한 추가 붕괴 방지를 위하여 덮개를 씌웠습니다. 그리고 문화재청에서는 소실된 숭례문을 원형에 가깝게 복구할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2013년 04월 29일 완공되어, 2013년 05월 04일 복원 완료를 기념하는 완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Ⅲ. 숭례문의 개요 간단히 설명
구 분 | 관 련 내 용 | 비 고 |
종 목 | 국보 제1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 |
범 위 | 숭례문 일체 | |
시 대 | 조선 태조 7년, 1398년 | |
소 유 자 | 대 한 민 국 | |
관 리 자 |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 | |
부속시설 관련 | 유적건조물, 정치 국방, 성, 성곽 시설 | |
위치(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40 | |
좌 표 | 북위 37° 33′ 35″ 동경 126° 58′ 31″ | |
관련 정보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정보 |
Ⅳ. 숭례문의 기능
1. 숭례문의 위치 및 기능
숭례문보다는 남대문이라고 보통 불렸듯이 경복궁 도성의 남쪽 대문으로서 기능하였습니다. 한양(서울)은 지형적으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계곡과 계곡 사이로 문을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북쪽은 북악산, 남쪽은 남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숭례문은 남서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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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남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과 함께 도성의 가장 중요한 두 관문으로 여겨져서 문루 또한 2층으로 크고 화려하게 지었으며, 통행량도 가장 많았습니다. 숭례문(남대문)은 주로 한양(서울)의 서쪽 교통을, 흥인지문(동대문)은 주로 서울의 동쪽 교통을 담당하였습니다.
2. 조선의 최종 관문으로서 숭례문(남대문)의 역할
숭례문은 국토의 북쪽에 있는 의주에서 한양으로, 남쪽에서는 부산, 목포에서 한양으로의 최종 관문이었습니다. 북쪽에 있는 의주는 가장 중요한 외교 국인 중국과 통하는 길이며, 무악재를 넘어 돈의문 바깥에 있던 모화관, 영은문을 따라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길이 중국 사신을 영접하는 기본적인 정식 도로였습니다. 이런 사안으로 하여 숭례문은 대외적으로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대표하는 이미지 역할도 하였습니다.
삼남로는 삼남 지방(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도읍인 한양(서울)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교통로로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오는 길, 임금의 행차길 등 다양한 기능을 맡았으며 가장 중요한 항목은 삼남 지방의 세곡과 물자가 마포나루 등 큰 나루터에서 하역하여 한양도성으로 수송되었습니다. 조선 태종 이방원 대에는 물류 운송을 편리하게 하려고 숭례문 근처 만초천까지 운하를 연결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Ⅴ. 숭례문의 구조
1. 2024년 현재 대한민국 성문의 최대 규모
숭례문은 견고한 육축(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 위에 전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가진 성문입니다. 흥인지문(동대문), 팔달문[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780(팔달로2가 138)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성문으로, 수원화성의 남문이며, 이명은 남문으로도 불림] 등과 함께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성문중에서 최대 규모입니다.
2. 숭례문의 양식
흥인지문(동대문)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공포 구조 등을 살펴보면 숭례문(남대문)은 조선 전기 양식, 흥인지문(동대문)은 조선 후기 양식으로 확연하게 구분이 됩니다. 흥인지문(동대문)은 조선 고종 당시 문루를 중건했기 때문입니다. 숭례문(남대문)의 경우 전체적으로 장식이 소박하고, 부재가 굵고 짜임이 건실하여 조선 초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붕은 우진각 지붕이며, 2층 잡상의 개수는 9개, 1층 잡상의 개수는 7개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3. 숭례문의 현재 단청
숭례문(남대문)의 2024년 현재 단청은 1961년~1963년 보수 당시 발견된 옛날 패턴을 참고하여, 1963년 당시 채색된 상태에 가깝게 복원하였습니다. 숭례문(남대문)의 단청 기록을 보면, 1954년, 1963년, 1970년, 1973년, 1988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서 단청을 다시 칠하면서 문양이 조금씩 변화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여러 단청 사례 중에서 어느 것이 원본이다.라고 하는 무리수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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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1963년의 것이 유일하게 고증을 받은 사례가 있기에 복원 당시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다른 조선 초기, 중기 건물에 흔적처럼 남아 있는 다른 건물들의 단청과 비교했을 때, 조선 초기 단청에 가까우므로 고증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는 편입니다. 최근 복원된 창경궁의 명정문(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정문) 단청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Ⅵ. 2010년 복원으로 밝혀진 사실
1. 기단의 높이
2010년 방화로 인한 숭례문(남대문) 복원 당시 밝혀진 사실로 보면 숭례문의 원래 기단은 지금의 지면보다 1m 60cm 정도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서 숭례문이 처음 건조될 조선 초기 이성계 시대(15세기)의 도로는 현재보다 1m 60cm 정도 낮았고, 상대적으로 숭례문의 성벽은 더 높았습니다.
2. 시대가 발달함에 따른 도로의 기능 향상
조선 후기로 가면서 통행량이 많아지고, 물건을 운반하는 기계가 점점 대형화되면서 도로를 반듯하고 넓게, 건설하다 보니 점차 기단이 묻히게 되었고 특히, 흥인지문(동대문) 같은 경우에는 임금 행차 때마다 흙을 파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기단을 낮추라 하였으나 지반 안정성 등 다양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2013년 완공한 복구공사 시에도 구한말과의 연속성, 지반 안정성 등 다양한 이유로 지반은 드러내지 않고 공사가 마무리되었습니다.
Ⅶ. 숭례문(남대문) 현판에 대한 논쟁
1. 춘원 이수광과 이긍익의 양녕대군 주장
이수광의 지봉유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양녕대군[1394년~1462년 11월 08일(양력), 조선 시대 태종 이방원의 큰아들, 왕자, 정치인, 화가, 시인, 어머니는 원경왕후, 세종대왕의 큰 형]은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뛰어났으나 글을 알지 못하는 척했다. 스스로 미친 척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지만 아무도 양녕대군의 진심을 아는 이가 없었다.라고 전합니다. 그러면서 양녕대군이 썼다고 기록이 되어있으나 여러 다른 주장이 존재합니다.
2. 추사 김정희의 문신 신장 주장 그리고 이규경의 정난종 주장
추사 김정희의 완당 전집에는 조선 초기의 문신인 신장의 글씨라고 기록이 되어있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숭례문이라는 이름은 삼봉 정도전이 지은 것이요, 그 액자는 세상에서 전하기를 양녕대군의 글씨라 한다. 하면서도 숭례문의 편액은 정난종이 쓴 것. 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3. 일제강점기 잡지 별건곤의 주장
일제강점기 때 잡지인 별건곤, 1929년 09월호에는 안평대군의 글씨는 오해요, 중종 시대 명필 유진동의 글씨.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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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숭례문 현판의 글쓴이는 2024년 현재 양녕대군이 정설로 보고 있습니다.
5. 숭례문이라는 이름은 경복궁 건축 시 정도전이 음양오행을 기준으로 배치하여 명칭을 부여하였습니다.
6. 숭례문의 현판은 양녕대군이 쓴 것으로 보입니다.
Ⅷ. 숭례문 현판과 다른 문 현판과의 차이점
한양(서울) 경복궁 도성 성곽의 다른 문과 일반적인 문들의 현판들은 대부분 가로로 달려 있는데 반하여, 숭례문(남대문)의 현판은 특이하게 세로로 제작하였습니다. 상기의 사유는 관악산의 화기에 대응하기 위하여 세로로 달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Ⅸ. 숭례문(남대문)의 건축, 중건, 보수, 방화, 복원의 역사
시 기 | 관 련 내 용 | 비 고 |
1396년, 태조 5년 | 최유경의 지휘로 준공, 태종 이방원의 자, 이방원이 현판 씀 | 양 력 |
1398년 태조 7년 | 숭례문 완공 | |
1433년 07월 | 숭례문을 완전히 헐고 땅을 돋운 뒤 새로 짓기로 정함 | |
1447년 08월 | 숭례문 신축 착공 | |
1448년 03월 17일 | 숭례문 신축 완공 | |
1479년 04월 02일 | 숭례문 중수 완공 | |
1907년 11월 21일 | 요시히토 일본 황태자가 방한 때, 일본 제국은 대일본 제국의 황태자가 머리를 숙이고 문루 밑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로 숭례문과 연결된 성곽을 헐어버림, 성곽을 헌 자리에 도로와 전차 레일을 설치하고, 숭례문 둘레에 화강암으로 일본식 석축을 쌓고, 문 앞에는 파출소와 가로등을 설치함. 이때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 | |
1908년 09월 | 숭례문과 소의문 부근 성벽 77간을 철거함 | |
1916년 | 고적급유물보존규칙 공포 | |
1934년 |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보물 1호 숭례문, 보물 2호 흥인지문, 보물 3호 원각사지십층석탑, 보물 4호 보신각종 지정 | |
1961년 | 한국전쟁 때 파손 부분 중수 착공 | |
1962년 12월 20일 | 대한민국 정부에서 조선총독부 자료를 참고로 숭례문 대한민국 보물 제1호로 재지정 | |
1963년 | 한국전쟁 때 파손 부분 중수 완공 | |
1994년 11월 | 미술전문지 가나이트 40호 미술인 40명 여론 조사 결과 서울의 랜드마크로 숭례문이 33표로 1위 선정 | |
2002년 02월 | 문화재위원회에서 숭례문 근접 관광 불허 | |
2003년 | 1907년에 헐린 성곽을 숭례문 좌우로 10m씩 복원 | |
2005년 05월 27일 |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고립된 숭례문 주변 광장 조성 | |
2006년 03월 03일 | 숭례문 중앙통로를 시민들에게 개방 | |
2008년 02월 10~11일 | 숭례문 방화로 대부분 소실(석축과 1층 일부만 남기고 1층 문루의 10%, 2층 문루의 90% 소실) | |
2010년 02월 10일 | 숭례문 복구공사 착공 | |
2013년 04월 29일 | 숭례문 복구공사 완공 | |
2013년 05월 01일 | 숭례문 관리자를 종전 서울시 중구청에서 문화재청으로 변경 | |
2013년 05월 04일 | 숭례문 공식 개방 |
Ⅹ. 숭례문(남대문), 대한민국 국보 제1호를 장시간 정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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Ⅺ. 귀하신 당신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건승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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